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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수첩] 한국판 '어느 샐러리맨의 죽음' 그리고...


  • 전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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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7-09-05 19:07:51

    외국계 보험회사에서 보험영업맨으로 활동 중인 20여 년 경력의 중년이 과도한 영업실적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생명을 마감, 보험업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 수서 경찰서에 따르면 5일 오후 2시15분 경 서울 강남구 P생명 사옥 21층에서 이 회사 소속 사업가형 지점장인 설계사 A씨(58)가 추락해 현장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변했다.

    P생명 측은 정확한 사인과 원인규명을 위해 경찰조사에 협조하고 있으며, 조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어떠한 입장도 말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A씨는 1996년부터 위촉계약을 맺어왔지만 부진한 영업실적 등으로 올해 초 계약 해지를 당했다.

    그는 회사로 부터 영업과 관련된 직접적인 관리, 감독을 받는 근로관계라고 주장했지만 P생명은 철저한 갑의 입장에서 이를 무시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P생명이 과도한 영업이익 창출을 목표로 사업가형 지점장에게 실적 압박을 가해 자살로 내몰아 보험업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사진=베타뉴스DB)

    사업가형 지점장제도는 계약직 신분의 지점장(점포장)이 영업실적에 대해 보험사가 수당을 지급하는 제도로 사측의 입장에선 생산성과 조직 관리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또 회사가 기본 경비를 제외하고 별도 지원 없이 점포장에게 운영을 맡김으로써 경비절감 뿐 아니라 부실조직의 퇴출효과를 가져와 회사로서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이러한 성과급형 제도는 고용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업무상 부담은 극해 달할 수 있다는 것이 실제 영업 현장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보험사 한 관계자는 "P생명은 과거 보험설계사 아줌마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해 대학 졸업자까지 설계사로 채용하는 등 설계사 영역에서 획기적인 시스템을 도입한 회사이다"라며 "사업가형 지점장의 경우 실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계약직의 형태이기 때문에 실제로 심적 부담이 큰 위치"라고 귀띔했다.

    P생명 홍보팀 팀장은 "사업가형 지점장의 경우 실적과 리더십 등을 평가해 수당 등을 책정하고 있다"면서 "사망경위를 파악 중에 있고, 수사 중이라 어떤 입장도 말할 수 없다"라며 고 말했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생명보험국장은 "보험사 지점장들이 자살을 택하는 경우는 영업실적 압박과 금전적인 채무관계에 기인한다"며 "채무관계 역시도 본인의 실적을 메우기 위해 사금융권의 신용대출 등을 받아서 벌어지는 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 국장은 이어 "사업가형 지점장의 경우 비정규직으로 근로관계를 맺게 되는데, 기본적인 정부정책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인 상황에서 이 같은 고용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정부정책에도 반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아서 밀러의 대표적 희곡 '어느 샐러리맨의 죽음'은 마지막 한달치 할부금을 낼 수 없자 가족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중년 남성의 이야기다. 가족에게 보험금을 남겨주기 위한 결단이었다.

    P생명의 사업가형 지점장이 이 희곡의 주인공처럼 최악의 선택을 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유추할 길이 없다. 단 희곡의 시대적인 배경이 미국의 대공황이었음을 감안할 때 불황기 벼랑길에 몰린 한국 샐러리맨의 참담한 현실을 직시, 뒤늦게라도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 공감대가 형성되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베타뉴스 전근홍 (jgh2174@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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