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사설

대기업이 장악한 암울한 IT 세상 정녕 소비자가 두렵지 않는가?


  • 황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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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2-08-14 10:35:41

    기업은 이윤을 남기는 것이 최대 목적이다. 따라서 자신들에게 돈을 지불하는 소비자를 왕처럼 모셔야 한다. 하지만 말 뿐이다. 기업들은 소비자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독과점이라는 시장 구조와 정보가 통제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기업들이 소비자를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 특히 복잡하고 전문적인 IT 분야에서는 더욱 위험하다. 최근 삼성전자와 KT 등 한국을 대표하는 IT 업체들의 사례를 보면 이런 걱정이 기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삼성전자, 갤럭시 S3의 화면 열화에 대해 책임 안 진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현존 최고의 스마트폰이라는 ‘갤럭시 S3’를 내놓았다. 빵빵한 하드웨어 제원과 최신 운영체제와 똑똑한 기능으로 무장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세상에 완벽한 제품은 없다. 갤럭시 S3에게도 단점은 있다. 문제는 약점을 바라보는 제조사의 태도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S3의 아몰레드 디스플레이에서 나타날 수 있는 화면 열화 문제에 대해서 제품 설명서에 ‘책임지지 않는다’는 문구를 넣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화면을 켠 채로 장시간 사용하다 보면 화면 열화가 발생하고, 스크린에 잔상이 남는다. 이는 명백한 제품 자체의 결함이다. 아몰레드 디스플레이가 가진 기술적인 한계다. 삼성전자는 문제가 불거지자 화면 열화에 대해서 A/S를 하겠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소비자 과실로 떠넘기려 했던 것은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 삼성전자 갤럭시 S3 간단 사용 설명서에 포함된 내용

     

    갤럭시 S3는 화면 열화 뿐 아니라 제품 외관에 있는 틈에 대해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일부 소비자들이 손에 쥐었을 때 미세한 흔들림이 느껴진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는 이 부분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제품 설명서에 “원활한 기구 동작을 위해 최소한의 유격은 필요합니다. 이 유격으로 인해 미세한 흔들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오래 사용하면 기구적인 마찰에 의해 유격이 처음 설계 시보다 커질 수 있습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결국 삼성전자는 제품을 만들 때부터 틈이 있고, 사용하다보면 틈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00만 원짜리(출고가 99만4천 원) 스마트폰이 처음부터 제품에 틈이 있고, 사용하다 보면 흔들릴 수 있다는 얘기를 곧이곧대로 믿을 소비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지 의문이다.

     

    KT, 조용히 사라진 ‘가족결합할인’ 혜택
    제조사 뿐 아니라 통신사들도 소비자를 겁내지 않고 있다. 이동통신업체들은 유선 인터넷, TV, 전화 사업까지 진출하면서 기존 고객들을 묶어두기 위해 ‘가족결합할인’ 제도를 도입했다. KT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데, KT가 7월6일부터 LTE 요금제 가입 고객들에게 최대 50% 할인되는 ‘가족결합할인’ 혜택을 중단했다.

     


    ▲ KT 결합 상품 가입자가 2011년 3월에 500만 명을 넘어섰다.

     

    문제는 7월6일 이후 가입자 뿐 아니라 기존에 가입한 소비자들까지 일방적으로 ‘가족결합할인’을 중단하고 ‘LTE 스마트 스폰서’로 변경해 버린 것이다. 6만2천 원짜리 LTE 요금제 사용자라면 가족결합할인으로 최대 3만1천 원을 할인받을 수 있지만, ‘스마트 스폰서’로는 2만 원 이하의 단말기 지원만 받을 수 있어 1만 원 이상 요금이 올라가는 상황이다. KT는 고객들이 항의하자 ‘전산장애’ 때문에 신규 가입자 뿐 아니라 기존 가입자도 변경되었다며 고객들의 손해에 대해서는 환불해 주겠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고객 몰래 혜택을 줄였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LTE에 대한 불편한 진실, 잘 나가는 LG U+가 미워요~
    요즘 통신 시장의 화두는 LTE다. LTE 얘기만 나오면 불편한 진실이 한 둘이 아니다. 올해 초 LTE 서비스를 위해 2G 서비스를 종료한 KT는 2G 서비스 종료일인 1월3일 전부터 2G망을 철거하기 시작해 일부 지역에서 2G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것이 확인 되었다. 또한 SKT는 LTE 서비스 지역이 일부 대도시에 한정되었음에도 ‘전국 서비스’ 개시라고 광고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 지금은 서비스가 중단된 LTE 대동여지도(2012년 3월27일까지 데이터가 반영된 모습)

     

    또한 최근에는 LTE 서비스 지역을 알려주던 ‘LTE 대동여지도(www.ltecoverage.co.kr)’ 관련 논란도 뜨겁다. SKT는 LTE 대동여지도를 만든 메가존이 LG 유플러스의 지원을 받았고, 자신들이 6월부터 전국망 구축에 적극 나서자 5월31일까지의 데이터만 공개하고 업데이트하지 않고 있는 점을 들어 LG 유플러스와 유착 관계를 의심한다고 공격했다. SKT의 문제제기가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지난 과거를 생각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메가존은 스마트폰 속도 측정 앱인 ‘벤치비 속도 측정’ 애플리케이션에서 얻은 정보를 가지고 LTE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 이용자들이 올린 수백만 건의 데이터를 가지고 만들었기 때문에 많은 소비자들이 LTE 대동여지도를 신뢰하고 있었다. 그 지도는 LTE 시대에서 약진하고 있는 LG 유플러스의 장점을 한 눈에 보여주고 있었다. SKT와 KT 입장에서는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지난 5월 ‘벤치비 속도 조작설’이 터졌다. LTE 서비스 지역에서 LG U+를 따라잡기 어려운 SKT와 KT는 ‘속도’를 경쟁 무기로 들고 나왔다. SKT는 LTE 속도킹 선발전 이벤트를, KT는 워프 챌린지 LTE 속도대결 이벤트를 경쟁적으로 진행했다. 이벤트를 시작하면서 벤치비 속도 측정 결과가 달라졌다. SKT와 KT는 다운로드 속도가 20Mbps 정도에서 50Mbps로 빨라진 반면 LG U+는 20Mbps 정도로 별 차이가 없었다. 같은 기간 또 다른 속도 측정 애플리케이션인 케이알 넷(www.kr.net)의 결과는 통신3사의 속도가 19~23Mbps에 머물렀다. 도대체 왜 속도가 갑자기 빨라졌을까? 이 때 누군가 인위적으로 벤치비 속도 측정 결과를 조작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특정 통신사에서 심야시간에 같은 장소 7곳에서 5,030회나 속도 측정을 했고, 또 특정 인터넷 주소 2개에서 11,507회의 속도 측정 데이터가 벤치비에 전송되었다. 1시간 15분 동안 부산, 제주, 김해, 전주 등 이동이 불가능한 지역에서 같은 휴대폰 고유 번호(맥 주소)로 전송된 데이터이기 때문에 조작된 것으로 의심된다고 했다.


    5월 벤치비 속도 조작설과 7월 LTE 대동여지도 사건은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LTE 대동여지도를 만든 메가존은 5월 이후 LTE 대동여지도 데이터 업데이트를 멈춘 이유가 바로 속도 조작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메가존의 설명에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결국 소비자는 안중에도 없고 통신사들끼리 경쟁에만 매몰되어 벌어진 비극인 셈이다.

     

    소비자 뿐 아니라 전문 기자들의 역할이 중요해
    서두에서 ‘소비자는 왕이다’고 했다. 하지만 소수 대기업들이 장악한 IT, 통신 시장에서는 ‘소비자는 봉이다’로 바뀐 것 같다. 자신들의 잘못을 알고도 소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소비자들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소비자들이 믿는 데이터를 조작하는 것은 기업 윤리를 저버린 행동이다. 이 모든 것은 대기업들이 장악한 시장 상황과 감독기관의 안일한 태도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나는 꼼수다’를 진행하는 김미화 누나는 “경제는 속지마~!”라고 외친다. IT 역시 마찬가지다. 기술적인 부분이 어렵더라도 똑똑한 소비자들이 속지 않는다면 업체들의 꼼수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또한 IT 전문 기자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업체의 눈치를 보며 수익과 관련된 기사를 쓰느라 전문 기자가 해야 할 일을 저버린다면 소비자들로부터 버림받는 것은 시간문제다.


    베타뉴스 황영하 (red@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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