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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질레트와 돌체구스토, 실속 챙긴 ‘닮은꼴’ 마케팅


  • 김영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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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1-05-29 19:00:01

    질레트라는 회사가 무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지난 1901년 킹C 질레트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면도날을 바꿀 수 있는 면도기를 세계 최초로 만들었고, 곧 회사를 만들었다. 그 결과 약 80년이 넘도록 면도기에 있어서는 거의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한 것이 바로 질레트다.

     

     

    이런 질레트에게 위기가 닥쳤다. 면도기와 별로 상관없는 신사업에 진출해서 실패한 데다가, 그 틈을 타서 큰 규모의 경쟁회사가 4개나 등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질레트의 최대 장점이었던 면도날을 바꿀 수 있는 면도기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전기면도기와 아예 한 번만 쓰고 버리는 이른바 일회용 면도기의 등장은 질레트를 사면초가로 몰아넣었다.

     

    당연히 회사 내부에서는 이를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두고 격론이 벌어졌다. 한쪽은 일회용 제품에 맞서 대량생산과 값을 낮춰 경쟁력을 확보하자는 쪽이었고, 다른 한쪽은 이제는 고급화 제품으로 승부를 하자는 쪽이었다.

     

    요즈음의 마트에서 볼 수 있듯, 질레트는 일회용 제품은 철수하고 고급 제품만을 만드는 것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여기에 면도기와 관계없는 회사들을 정리하고,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면도거품 등 관련 사업에 집중했다. 특히 여성용 면도기의 개발은 엄청난 호재가 되었는데, 최근의 판매량을 보면 남성용과 여성용의 판매량이 큰 차이 없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보통 여기까지는 질레트의 성공적은 마케팅 사례로 잘 알려진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에 다름 아닌 소모품이 있다는 것도 이제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마트에 들릴 때마다 면도기와 면도날이 함께 들어있는 세트와 면도날만 사는 것과 비슷한 값으로 팔리는 것에 궁금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른바 질레트 마케팅, 다른 말로는 면도기 마케팅이라 불리는 것이다.

     

     

    이러한 질레트 마케팅은 그 후로 많은 제품에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비슷한 성격의 전동칫솔의 브라운과 오랄비의 칫솔모 몇 개만 사도 칫솔 하나와 비슷하다. 그리고 같은 회사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어지간해서는 호환되지 않는다. 어떤 이유로 저렇게 값이 정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모품에 비중을 두고 있지 않으면 이런 값이 정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질레트만큼 이를 잘 활용한 회사는 다름 아닌 HP로 대표되는 프린터 회사들이다. 물론 면도기나 전동칫솔만큼 싸지는 않지만 프린터 역시 소모품에 방점을 두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인쇄 품질, 소모품 절약, 인쇄 정보 제공 등의 이런 저런 이유를 대고는 있지만 결국 프린터 본체가 아닌 소모품에서 최대의 마진을 남기는 것이 결국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이미 보여준 질레트라는 선배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프린터업계의 맏형인 HP는 질레트처럼 단지 프린터에만 집중하지 않고, IT전반을 어우르는 거인으로 성장하고는 있지만 그들의 가장 주된 수입원 가운데 하나가 작디작은 프린터 잉크 한 방울, 한 방울에서 나온다는 것을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는 듯하다. 적어도 경쟁사에 비해서는 그렇다. 요즈음 레이저프린터로의 전환에 어려움을 겪는 일부 프린터 제조사들이 공식적으로 무한잉크를 쓸 수 있는 프린터를 내보내는 것은 이제 보통의 노력으로는 그들의 경쟁사를 이기기 어렵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준다.

     

     

    요즈음 홈쇼핑을 보면 돌체구스토로 대표되는 커피메이커가 인기다. 수백만 원을 호가하던 커피메이커들은 어느덧 처음 선보였을 때의 1/4 정도인 싼 제품들이 선보이고 있다. 찾는 이들이 늘어 대량생산이 이루어지고 있구나 생각하기보단 그들의 캡슐커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맛, 저런 맛의 커피를 쉽고 편하게 내려 먹을 수 있다고 자랑하지만 그들의 제품과 마케팅이 이미 질레트와 브라운과 HP로부터 한 수 배운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것이다.

     

    하나 바란다면 이제 환경도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소모품 마케팅으로 인한 환경의 피해를 줄이면서도, 효과적으로 판매량을 지속적으로 늘릴 수 있는 마케팅 기법과 기술의 만남은 계속될 것이다. 과연 커피 메이커 다음은 누구의 차례일까?


    베타뉴스 김영로 (bear@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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