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인터뷰

[GC특집-엔진편①] 독일 명품 개발사, 크라이텍을 가다


  • 김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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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0-08-16 17:27:06

    특집은 독일 현지의 개발사 크라이텍 탐방(엔진편)을 시작으로 GC 현장에서 만난 또 다른 엔진 개발사 에픽게임즈(엔진편), 독일 퍼블리셔의 소개(퍼블리셔편) 그리고 독일 게임, 시장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시장편)로 이루어집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FPS '크라이시스'의 개발사이자 세계적인 게임엔진 개발사 크라이텍 본사를 소개합니다. 독일 현지에서 전해오는 크라이텍의 소개 들어보실까요?


    독일하면 생각나는 것은 무엇일까?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아마 바로 게임을 떠올리는 이들은 많지 않을 듯 싶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도 많은 사람들이 독일에서 만든 엔진을 심장으로 한 게임을 즐기고 있다. 바로 크라이텍 이야기다. 크라이엔진은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 지고 있을까? 플레이포럼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직원 300명의 크라이텍 본사를 직접 찾았다.
     

    나중에 더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크라이텍은 터키 출신의 3형제가 만든 회사다. 터키와 독일 그리고 게임엔진이라는 이 이질적인 조합이 크라이텍의 시작이자 본질이다. 직접 찾아가 본 크라이텍에서는 한국, 스페인 등 세계 각지에서 온 개발자들이 약간은 어두운 조명 아래서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내년으로 출시 예정이 잡혀있는 '크라이시스2'의 타임테이블이  자리마다 빽빽했다.              
     

    비행기, 트램, 우반까지. 멀고 먼 독일 개발사 크라이텍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11시간을 이동하면 독일의 관문에 해당하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한다. 프랑크푸르트는 인구 약 100만 명이 거주하는 독일의 5대 도시(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쾰른) 중 하나다. 세계 최초로 견본시(메세)가 열린 도시이며 유럽 금융의 중심지다. 또 독일을 대표하는 문호 괴테가 태어나고 청춘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덕분에 시내 중심에는 하늘을 찌르는 고층빌딩과 오래된 중세건물들이 함께 서있는 진풍경을 만날 수도 있다.


    크라이텍 본사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프랑크푸르트 중앙역(Hbf)에서 11번 트램(노면기차)을 타고 약 30분을 이동해야 한다. 프랑크푸르트 시내에서도 외곽에 위치한 이곳은 주로 공장이나 대형 사무실들이 위치한 업무지구에 해당한다. 기자가 찾아간 당시에 11번 트램이 공사 중이라 중간 지점인 동물원(ZOO)역에서 내려 U-반(우반: 지하철)으로 두 번 갈아타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두 배의 시간이 걸려 본사에 도착했다.


    사실 헤매는 동안 11시간의 비행보다 1시간 이동거리가 심리적으로 더 아득하게 느껴졌다.


    독일 특유의 구름 낀 흐린 날씨에 다소 살풍경한 주변 환경이 초행길을 더욱 낯설게 만들었다. 독일의 경우 지방자치가 발달한 까닭에 한 도시에 여러 게임회사가 모여 있는 경우는 드물다. 프랑크푸르트에 세가와 닌텐도의 유럽지사가 있다면, 쾰른에는 EA와 액티비전 등 대형 게임회사가 위치해있다. 이밖에 베를린과 함부르크에도 온라인 게임회사 흩어져 자리잡고 있다. 크라이텍 역시 5년 전까지만 해도 작은 도시 코부르크에 있었다.


    한국회사에서도 일한 적이 있는 파하 슐츠씨가 입구에서 기자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2년 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개최된 게임컨벤션에서 만났던 그는 당시 엔씨소프트 유럽 지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한국어, 독일어, 영어에 능통한 파하 슐츠는 현재 크라이텍의 전략 기획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그와 함께 회사 안내를 도와준 것은 옌스 샤퍼씨였다.


    올해 35살인 옌스 샤퍼씨는 “프랑크푸르트를 떠나서 살아본 적이 없으며, 떠나고 싶은 생각도 없다”고 말하는 프랑크푸르트 토박이. 그는 2년 전, 크라이텍에 합류하여 홍보 및 대외업무를 맡고 있다. 기자에게는 다음 주에 개최되는 GDC(GC와 같이 진행하는 개발자 컨퍼런스)유럽용 기념품인 티셔츠를 선물로 주었다.
     

    크라이텍은 입주해있는 건물의 2층 전부와 3층 절반, 4층 일부를 쓰고 있었다(유럽의 건물 개념은 우리와 달리 1층을 0층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한 층씩 높여 생각하는 것이 맞다). 2층에는 200명의 개발자들이 출시를 앞둔 ‘크라이시스2’ 막바지 작업으로 몹시 바쁜 분위기였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느껴지는 3층에는 체밧 옐리 대표의 사무실과 R&D, 인터넷, 엔진 개발 및 서비스, 마케팅 인력들의 공간이다. 4층에는 게임 개발에 이용하는 모션 캡처 시설이 있다.


    사진에 빈자리가 많은 것은 때마침 점심시간에 찾아갔기 때문이다. 한가지 더 부연하자면, 다음주에 있을 GDC 유럽 준비 때문에 온갖 상자들이 곳곳에 쌓여있었다. ‘늘 이 정도로 어수선한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 회사 소개에 뒤이은 귀여운 변명이다. 

     


    ▲ 크라이텍 입구 전경


    피해갈 수 없었다, 크라이텍 개발자들도 즐기는 스타2


    점심은 보통 지하에 있는 직원 식당을 이용하거나 휴게실에서 가져온 도시락을 함께 먹는 것이 일상적인 풍경이다. 삼삼오오 모여 도시락을 먹는 풍경은 한국 개발사와 별로 다르지 않은 느낌. 마치 마트에 오기라도 한 것처럼 잔뜩 쌓여있는 음료수 상자는 직원들이 자유롭게 마실 수 있게 배려한 흔적이다.


    전체적으로 업무 공간은 서양 개발사 특유의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스튜디오 한쪽에는 빼곡하게 전세계 PC게임 잡지의 표지를 장식한 기념액자가 있다. 간접조명으로 전체적으로 명도를 낮추었으며, 방으로 나뉘어져 있기보다는 저마다 칸막이나 벽만으로 적당히 공간을 나누어 놓았다. 출신지역의 상징깃발이나 재미있는 사진, 컨셉 아트가 벽면 곳곳에 등장했다. 촛불을 켜놓고 작업하던 블리자드 그래픽 담당 개발자도 있었으니, 어두컴컴한 곳을 좋아하는 것은 전세계 디자이너들의 공통된 지향이다.
     

    "일부러 창문도 많고 밝은 공간으로 이사했던 것인데, 개발자들이 스스로 커튼을 치고 어둡게 만들어버리더라고요."체밧 옐리 대표가 어쩔 수 없었다는 듯이 말했다.


    현장에서 제일 눈에 띈 것은 내년 상반기 출시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크라이시스2의  스케줄. 아트팀, 프로그램팀, QA팀, PM팀 할 것 없이 색색으로 만들어진 수십 개의 표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타임테이블을 한눈에 정리해놨다. 패키지 게임 개발사답게 철저한 일정 및 작업 관리가 인상적이었다. 샤워시설에 한달에 한번은 미용사가 직접 와서 이발서비스도 한다고 하니, 개발 때문에 식음을 전폐하는 것은 동서양이 마찬가지다.


    점심시간이라 더욱 흥미로운 장면이 포착되었다. ‘스타크래프트2’ 출시 열풍은 크라이텍도 피할 수 없었다. 다른 게임을 이용하는 모습이 보기 드문 가운데, ‘식사 후 한 판’이라는 스타크래프트의 플레이 패턴은 여기서도 드러났다. 사진을 찍는 줄도 모르고 게임 삼매경에 빠진 개발자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 스타2를 즐기는 개발자

     

                                            ▲어두워야 일이 잘돼!

     

    젊은 유럽 개발자가 생각하는 나와 크라이텍, 그리고 꿈


    점심 시간 이후에 젊은 직원들과 간단한 인터뷰를 나누었다. 체밧 옐리 대표만 만나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의 젊은 개발사 직원들은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전세계 5개국(우크라이나, 헝가, 불가리, 영국, 서울)에 지사를 두고 있는 기업답게 본사에만 40개국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에는 2명의 한국인 개발자도 있다. “엔진을 구입한 파트너 개발사에서 그룹으로 연수생이 오면 회사가 더욱 떠들썩해지죠.”


    영국에서 온 젊은 매니저 톰 에스워드(24)의 전 직장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었다. 그는 “다른 나라에서 일하고 싶은 기회를 찾아 왔으며, 크라이시스2같은 대작을 개발하는 큰 회사에서 일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커뮤니티 담당으로 크라이텍의 공식 커뮤니티,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관리하고 있다.


    "스페인이나 독일이나 유럽회사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비슷하다. 대신에 여기서는 보다 큰 규모의 커뮤니티를 관리하면서 많은 유저를 만날 수 있는 게 보람 있다.”


    퀘이크 시리즈로 게임업계에 입문한 톰의 최종적인 꿈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나아가 홍보나 마케팅의 전문가가 되는 것. “꿈? 로또 같은 거 당첨이 아니라면”이라고 농담 섞인 단서를 붙였다.


    톰과 같은 나이인 론 흘로이는 총이나 기타 게임의 오브젝트를 모델링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독특하게도 군대 복무 경험을 가지고 있다. 신문방송학을 공부한 그는 ‘기자가 되고 싶다’는 애초의 꿈 대신에 취미로 삼았던 게임개발의 길로 진로를 바꾸었다. 크라이 엔진의 모드를 독학으로 만지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도 최종적인 꿈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적은 없지만, 지금 하는 일에서 전문가로 인정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에 크라이텍보다는 큰 게임 회사가 없기 때문에 입사에 만족한다. 개발할 때는 힘들지만 게임잡지에 우리 게임의 소개가 실리거나 트레일러가 유튜브에 공개되었을 때 그 반응을 보는 것이 제일 힘이 된다.”


    온정주의 없는 해외 개발사, 잘못하면 다음날 책상 치워

              


    마지막으로 2년 전 한국에서 독일로 건너온 정재원(34)씨를 만났다. 그는 현재 크라이텍에서 샌드박스 툴 개발을 맡고 있다.
     

    개발경력 9년의 그는 한국 델피아이에서 ‘니트로패밀리’와 NHN에서 ‘아크로드’ 등을 개발했다. 이밖에도 티엔터테인먼트와 레드덕 등에서 언리얼엔진 기반 게임 개발에 참여하며 해외 개발사에 대한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영어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고, 2년 전 홀로 독일로 오게 되었다.


    “가족들이 오기 6개월 전까지 혼자서 고생했죠. 자취한 본 경험이 없고 외국이기 때문에 쓰레기를 어디다 버리고 세탁기 돌리는 것 하나도 어려웠어요. 회사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오후 8시 이후에는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아버리는 게 불편하지만, 독일로 온 후 아내는 아이 키우기가 좋다며 만족해요. 주거지도 자연환경과 가깝고 유모차를 배려한 부분도 잘되어있죠.”


    그러나 정씨는 외국 개발사의 상황이 생각만큼 달콤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한국 특유의 집단주의, 온정주의와 다른 철저한 개인주의, 책임주의가 있다는 것. 게임이 잘못 되어도 “송별 회식도 하고 다음에 다시 보자며 정으로 무마하는” 분위기와 철저히 달리, 일을 잘못 한 사람이 책임을 지게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 있다. “회식은커녕, 잘못한 책임자의 책상이 바로 다음날 치워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언어는 성격에 기인하는 부분도 많으니, 사교적인 사람이라면 꾸준히 영어공부를 하면 더 나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크라이텍, 한국에서 제2의 송재경 나오길 기대해


    바쁜 일정 때문에 자리를 일어선 체밧 대표 대신에 칼 존스(37) 라이선스 담당 이사가 크라이 엔진과 크라이텍의 정책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크라이 엔진의 장점은 물리, 그래픽, 인공지능(AI) 등이 통합된 개발툴이기 때문에 좀 더 손쉽게 개발할 수 있다. 영화 아바타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3D 입체 영상기술에 관심을 갖고 개발을 했기 때문에 3D 스트레오 구현도 문제 없다. 추가적으로 한국 개발사를 통해서 계속적으로 MMO 개발에 대한 많은 피드백을 받고 있다. 월드를 한꺼번에 렌더링하거나 여러 사람이 동시에 에디팅하는 기술 등도 요구해서 배우고 있는 부분도 있다.”
     

    그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기자에게 개인적으로 적은 메모를 보여주었다. 홍익대, 동국대, 배재대, 동서대 등의 이름이었다. 그는 전문교육기관을 대상으로 한 크라이텍의 엔진 무상 제공 정책에 대해 꼭 소개해 달라며 신신당부했다. "개발자를 꿈꾸는 지망생들이 크라이텍의 교육용 엔진기술을 무료로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칼 존스 이사가 말했다. “제 2의 송재경이 또 나올 수 있길 기대합니다.”

     

    김명희 (플레이포럼) <playforum.net>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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