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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남산 자락에 묻은 여고시절, 그리고 '곤돌라'에 부쳐


  • 유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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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23-12-31 18:40:48

    ▲ 남산의 일몰 ©임정원씨 제공
    <편집자 주> 
    요즘 서울 남산이 시끄럽다. 기존에 케이블카만 있던 남산에 서울시가 관광용 곤돌라를 설치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 논란은 최근 불거진 것도 아니고 관련해 여러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서울 중구 주민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최근 서울시는 환경단체연합과 학부모연대 등 시민단체들의 극렬한 반대에도 남산곤돌라 설치 방침을 확고히하고 그 삽을 뜰 기세다.
     
    이에 베타뉴스는 남산을 엄마 품으로 여기고 살았다는 한 중구 엄마의 짧은 소회를 싣는 지면을 준비했다.
     
    청구초등학교와 장충여중, 그리고 서울 남산 자락 숭의여고를 나왔고, 할아버지 때부터 중구에 살고 있는 토박이 임정원(42)씨. 정원씨에게 남산은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앞으로 바뀔 지 모르는 남산의 모습에 대한 생각은 무엇인지 들어봤다.
     

    ▲ 남측순환로에서 바라본 남산 ©임정원씨 제공
     
     나와 남산, 나의 남산  
                                임 정 원 
     
    남산은 저희 숭의 졸업생들에게는 휴식의 공간이자 입시에 지친 학업생활 중 깊은 숨을 들이쉴 수 있게 해준 쉼의 공간입니다. 매일 아침이면 오르는 그 길은 어린 여고생에게는 때로는 숨이 차오르는 산세였지만, 학교에 오는 길에 마주치는 자연의 생명력은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자 제 미래 희망의 투영이었습니다.
     
    또 쉬는 시간 학교 옥상에서 서울 전경을 내려다보며 ‘앞으로 우리가 사회에 나가서 일하고 삶의 기반을 닦을 수 있는 일터가 저기 어딘가에 있겠지?’라며 꿈을 키웠고, 봄이면 ‘남산 둘레길 걷기 대회’로 봄 꽃망울을 마주하며 추억 가득한 학창생활을 만끽했습니다.
     
    그보다 더 어렸을 적 청구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토요일 2주에 한번씩 ‘남산 걷기대회’가 있어 체력을 기르는 것은 물론 친구들과도 돈독한 우정을 쌓았습니다. 

    ▲ 서울 중구 거주 임정원(42) 씨 ©본인 제공
    또 황해도 출신 실향민으로 중구에 뿌리를 내리셨던 할아버지와의 남산에 얽힌 추억도 문득 생각납니다. 그 시절 남산타운아파트가 개발되기도 전 저희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마다 남산으로 향하여 약수를 떠오셨습니다.
     
    지금은 버티고개역이라 부르는 길을 따라 그때는 차도와 인도의 구분도 명확치 않았던 위험한 길을 따라 여섯 식구의 생명수와도 같은 남산 줄기 그 끝자락에서 길어온 약수.
     
    할아버지의 정성과 사랑은 페트병 6개 속에 스며서 매일 아침 우리 가족에게 배달되었습니다. 그 남산 자락의 물을 마시고 저희 식구들은 매일을 힘차게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남산에는 3대에 걸친 우리 가족의 추억이 서려있고, 여기에 더해 대대로 내려오는 대한민국 중심의 중구의 역사 또한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합니다. 
     

    ▲ 서울 응봉산에서 바라본 남산 모습 ©임정원씨 제공

     
    남산을 끼고 있는 중구에 살아서 우리는 남산을 뒷마당처럼 갈 수 있고, 남산에 얽힌 추억을 함께하고, 남산의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다는 작은 자랑거리가 중구 사람들에게는 특권과도 같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듯 ‘추억과 꿈의 공간’ 남산은 중구에 사는 저와 친구들 모두의 자부심일 뿐 아니라 서울 시민의 자랑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남산 밤 벚꽃 ©임정원 씨 제공
     
     
    봄에는 꽃구경, 여름에는 싱그러운 초록 잎의 향연, 가을에는 빨갛고 노란 단풍과 낙엽, 겨울에는 그 쓸쓸함마저 사랑스러운 곳이 바로 남산입니다. 
     
    또 남산은 사시사철 마음이 신산할 때 찾아가는 어머니의 품입니다.  늘 그 자리에서 ‘지치면 쉬다가렴’하며 언제나 인자하게 주민들의 휴식공간이 돼주는 여유로운 공간입니다.
     
    정상에서의 하늘과 맞닿는 웅장함과 함께 외적으로부터 수도 한성을 수호하기 위해 봉화를 올리던 역사의 장소.
     
    남산은 역사와 함께 저희들에게 그 곁을 내어줬습니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스스로의 모든 것을 내어준 고마운 자연이자 역사의 유산이 남산입니다.

    ▲ 남산 서울타워 모습 ©임정원 씨 제공
     

    그런데 이제 이 남산 허리에 '곤돌라'라는 기괴한 구조물이 생긴다고 합니다. 

    남산 자락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꿈과 우정을 가꿔온 저는  오늘 이 고마운 남산을 지키지 못하고 만 것이 통탄스럽습니다. 
     
    저는 서울시와 오세훈 시장이 어떤 깊은 뜻을 가지고 있는지 전부다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남산의 옆구리에 징을 박고 허리를 찌르며 더 이상 이 아름다운 추억의 장소를 아프게 만들지 말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남산을 그냥 그대로의 모습으로 중구민과 서울시민에게 돌려줄 것을 미약한 제가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남산을 사랑하는 서울 중구 사람 임정원 올림. 
     
    (기고문의 주장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베타뉴스 유주영 기자 (boa@beta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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