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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수 천 년 세월 품은 울산 반구대암각화를 가다


  • 정하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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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23-08-16 09:12:22

    ▲ 지난 15일 오후 울산 울주군 언양읍 반구대 암각화가 절반가량 물에 잠겨 있다. © (촬영=정하균) 

    불어난 하천에 잠겼다가 노출되는 일 반복...문화재 보존은커녕 훼손 가속화
    올해 9월까지 세계유산센터에 등재 신청서 초안..보존 여부에 힘 쏟아야 지적

    신석기 시대 생활상을 보여주는 국보 제147호로 지정된 울주 천전리 각석은 우리나라 최초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암각화다. 반구대암각화는 원효대사가 머물던 반고사(盤皐寺) 터를 찾던 동국대 불교유적 조사팀에 의해 1970년 12월24일 '천전리각석'이 발견된 이후 1년이 지난 1971년 12월25일 마을 주민의 도움으로 발견됐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도 불린다.

    대곡리에서 발견된 반구대 암각화는 바위 면에 새끼를 업은 귀신고래, 호랑이 등 그림 300여 점이 새겨져 있다. 또 단체로 배를 타고 고래를 잡거나 벌거벗고 피리 부는 사람 등 신석기시대부터 신라시대까지 생활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그림이 새겨져 있어 문화·학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세계적 유산이다.

    마치 거북이 넙죽 엎드린 형상이므로 반구대(盤龜臺)라 한다. 두동면 천전계곡(川前溪谷)으로부터 흘러내리는 옥류가 이곳에 모여 호반을 형성하니 절승가경(絶勝佳景)으로 이름이 높다. 그래서 옛날부터 경향각처의 시인묵객들은 이곳을 찾아 시영(詩詠)으로써 경관을 즐겼다고 한다. 암각화란 선사시대의 사람들이 생활 주변에서 일어난 갖가지 일들을 주제로 삼아 그것을 바위에 새겨서 그린 그림이다. 주로 커다란 바위 등 집단의 성스러운 장소에 그렸는데, 사람들은 그곳에 모여서 각종 의례를 거행했다고 추측된다.

    하지만, 신성한 공간이었던 반구대 암각화 바위는 언제부턴가 더 이상 사람이 찾지 않는 장소가 돼 수천 년 동안 잊혀졌다. 발견된 이후에도 처음 잠깐 언론과 일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았으나 잊혀지다시피 했다가 20여년이 지나서 그 가치가 새롭게 주목받으면서 1995년에야 국보로 지정됐다.

    ▲ 반구대 암각화. 암각화엔 귀신고래, 호랑이 등 그림 300여 점이 새겨져 있다. © (촬영=정하균)

    15일 오후 이곳을 찾은 기자의 눈엔 많은 비가 내려 절반이 잠긴 반구대 암각화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불어난 하천에 잠겼다가 다시 물 밖으로 노출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문화재 보존은커녕 훼손이 가속화 되고 있는 실정이다. 공휴일을 맞아 찾은 관광객들이 암각화를 보기 위해 설치된 고배율 망원경에 눈을 대고 분주한 모습이다.

    문제는 반구대는 발견 수년 전 지어진 울주군 대곡천 내 사연댐 저수 구역 안에 있어 매년 장마철마다 수시로 침수 피해를 보았다. 사연댐 수위가 53m를 넘으면 이 암각화가 물에 잠기기 시작한다. 연평균 42일가량 이런 식으로 물에 잠기는 바람에 그림이 갈수록 희미해졌고 세계유산 등재에도 발목이 잡혔다.

    사연댐은 울산의 공업용수 전용댐으로 1962년 만들어져 1965년에 물이 채워졌다. 지금은 2005년 상류에 만들어진 대곡댐과 함께 울산 시민의 생활용수로 공급되고 있다. 반구대암각화가 발견되기 전에 댐이 건설돼 암각화가 연중 8개월 가량 물에 잠긴 기간이 50년 간 이어졌다. 반구대암각화 보존대책으로 대곡천의 유로변경, 암각화 앞에 차수벽과 생태제방 설치 등의 방안이 장기간 검토되고 모형 실험까지 시도됐으나 모두 실효성이 낮고 원형 보존이라는 취지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실행되지 못했다. 7천년 동안 보존돼 온 소중한 보물이 불과 50년 사이에 물에 잠기었다, 나왔다 반복하는 사이에 그 훼손의 정도가 심각한 수준이 된 것이다.

    문화재청과 울산시는 올해 9월까지 세계유산센터에 등재신청서 초안을 낼 예정이며, 내년 1월에 최종 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지만, 유네스코의 현지 실사와 평가를 거쳐야 등재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보존여부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과거 문화해설사로 활동했던 문영선 씨(부산 기장군·70대·여)는 "아들 내외와 함께 반구대암각화를 구경차 방문했는데, 이렇게 물에 잠겨 있는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수 천 년 세월을 품음 반구대 암각화가) 하루빨리 물에 잠기지 않도록 당국에서 조치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암각화는 4월부터 9월중순 사이 오후 4시경이 되면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에 햇빛이 비쳐 잘 보이지 않던 그림들이 보인다고 한다.

    한편 울산시는 지난해 3월 사연댐에 수문을 3개 설치해 댐 수위를 53m 미만으로 유지함으로써 암각화 침수를 예방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 방안은 환경부의 '사연댐 안전성 강화사업'에 반영돼 진행 중으로, 기획재정부 재정사업평가위원회에서 사업계획 적정성 재검토 심의를 마무리한 상태다. 다만 문화재청과 울산시는 2025년에 세계유산 등재를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 등재 절차에 맞춰 수문 설치도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베타뉴스 정하균 기자 (a1776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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