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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 여행 에세이,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돌풍 예고


  • 김광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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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20-06-01 10:00:29

    ▲ 사진제공(전남방송)

    마흔 넘어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길 위에는 단지 걷는 한 사람만 있을 뿐이다

    [베타뉴스=김광열기자] “늘 그렇다. 힘든 일이든 기쁜 일이든 빨리 정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새로 시작할 수가 없다.” 저자 차노휘가 말한 이 글귀가 마음에 들어와 박혀 떠나가지를 않고 있다. 불혹이라고도 일컫는 마흔이라는 나이는 공자가 바라보기에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이다.

    뚝심 있고, 제 자리를 굳건히 지킬 줄 알고, 방황과 혼란을 숱하게 겪던 우리들의 20~30대를 거쳐 지나 온 그런 나이이다. 누군가는 이 ‘마흔’을 안정이라고 읽을 것이지만, 누군가는 분명 안일, 또는 지루라고 읽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마흔’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인가를 움켜쥔 채 흔들리지 않기를 갈망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발견한 틈 사이로, 저자는 홀로 훌쩍 여행을 떠났다.

    혼자서 훌쩍 여행을 떠나는 것은 생각보다 만만찮은 일이다. 당장 국내여행을 간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나 혼자 사람들이 북적댈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을지, 함께하는 이들 없이 지나쳐가는 풍경 속에서 홀로 무슨 사색에 잠길 것인지조차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혼자 모든 것을 해낸다는 것은 혼자가 되는 일이다. 혼자가 되는 일은 뒤늦은 ‘독립’이다.

    이렇게 말한 저자는 홀로 떠난 낯선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독립을 해 보았고, 이제는 길 위에 서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한다. 극적인 변화는 얻을 수 없을지 몰라도 굳은 심지를 얻을 수 있었고, 자존감을 한층 더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발 한 발 내딛으면서 자신 전부를 쏟아부을 수 있었던 든든한 아군, 용기를 확보한 저자의 발걸음을 찬찬히 짚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본문 속으로

    중간지대, 회색지대에서 옮겨가야 할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두려움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발을 딛는 쪽으로 내 전부를 쏟아부을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그게 용기라면 나는 든든한 아군을 확보한 셈이다.

    철저하게 낯선 공간에서, 무엇보다 언어가 다른 곳에서, 의지할 사람 없이 오롯이 혼자 모든 것을 해낸다는 것. 그것은 혼자가 되는 일이었다. 뒤늦은 ‘독립’이었다.

    나는 이제 길 위에 서는 것이 두렵지 않다. 내 걷기는 장담하건대 숨을 쉬는 한 계속될 것이다. 세상의 길이란 모든 길을 걸을, 준비운동에 불과할 뿐이다. 그 길에 ‘글’과 동행할 것이다. 글이라는 것은 내 걸음걸이에 윤기를 더하면서 내밀한 이야기를 나눌 좋은 친구이기 때문이다. (14~15쪽)

    “산티아고까지 완주하게 된다면 혼자만의 힘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 내가 내 발로 걷지만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알게 모르게 받잖아. 맥스와 걸으면 서도 너는 도움을 받았을 거야. 맥스도 마찬가지야. 너와 동행해서 외롭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어. 길 위에서는 만남도 이별도 아무 대가 없이 다가오니까. 또한 아무 대가 없이 베푼 인정과 여러 응원이 있으니까. 이런 힘들이 모여서 완주를 해낼 수 있는 거야.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힘이지. (150쪽)

    나는 도돌이표를 좋아한다. 끝났다 싶으면 처음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그것. 그 한없는 순환이 내 삶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죽음은 또 다른 생명의 탄생을 위한 것이기에 결국은 시작도 끝도 한 몸이다. 이것이 가면 또 다른 ‘이것’이 올 것이다.

    세상의 끝도 간절한 ‘시작’을 위한 도돌이표 같은 것이 아닐까. 피니스테레는 ‘피니스끝’와 ‘테레땅’의 합성어이며 로마시대에 그 이름이 지어졌다. 나는 진정한 땅 끝을 보기 위해서 ‘피니스테레 곶Cape Fisterra’까지 갔다.

    땅 끝이라는 상징. 0km를 나타내는 표지석. 순례자들의 소지품이 걸린 철탑. 뭔가를 태운 흔적. 전에는 이곳에서 신고 왔던 신발 등을 태웠다.

    ‘태운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헌것을 태우고 새것을 얻겠다는, 묵은 죄를 벗고 새로워지겠다는. 불이란 일종의 소독이나 정화를 의미한다. 지금은 환경보호 이유로 금지되고 그 흔적만 남아 있다. 나는 불을 피운 흔적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313쪽)


    베타뉴스 김광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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